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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재능있는 창작가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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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찬(1910. 1. 15-1974. 1. 4) 혁명시인.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외국에 가서 공부하다가 학비난으로 중퇴한후 시창작의 길에 들어 섰으며 《카프》의 맹원으로 활동하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수년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광복후 김일성주석의 크나큰 신임으로 당시 함경남도 혜산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함남일보사 편집국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처음부터 진보적인 문학활동을 벌린 그는 광복전에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겪는 우리 인민의 수난과 고통을 노래하면서 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들을 찬양한 서정시 《만기》(1934년), 《면회》(1934년), 《달밤》(1935년), 《후치령》(1935년) 등을 창작하였다.
특히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의 불패의 위력과 그에 대한 인민들의 동경과 신뢰, 조국광복에 대한 확신을 노래한 서정시 《국경의 밤》(1937년)과 《눈 내리는 보성의 밤》(1938년)을 창작발표하였다.
조국의 광복과 함께 자기의 창작적재능을 비로소 활짝 꽃 피울수 있었던 그는 주체35(1946)년 4월 주석을 몸 가까이 모신 자리에서 송시 《김일성장군 찬가》를 지어 읊었다.
그후 주석에 대한 전체 조선인민의 다함 없는 흠모와 존경, 최대의 찬양과 칭송의 마음을 뜨겁게 노래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가사를 창작하였다.
시인은 그이후에도 《삼천만의 화창》, 《더욱 굳게 뭉치리 장군님 두리에》, 《우리의 수도를 아름다웁게 하는건》 등 김일성주석을 칭송하는 많은 송가들을 창작하였다. 그후 서정시 《나무 한그루 바로 못선 고지에서》(1951년), 《불길》(1952년), 《어로공 금녀》(1954년), 《자랑하노라 나의 조국》(1961년) 등 많은 시들을 써서 혁명발전의 매시기 우리 인민을 투쟁에로 고무하였으며 우리 시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비롯하여 사상예술적으로 우수한 시작품들을 많이 창작한 리찬을 《혁명시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크나큰 신임을 베풀어 주시였다.
그의 시집으로 《화원》(1946년), 《승리의 기록》(1949년), 《태양의 노래》(1982년)가 있다. 그의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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