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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재능있는 창작가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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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1907. 10. 11-1930. 8. 25) 항일혁명투사, 혁명시인.
평안북도의 한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여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며 성장하였다.
혁명의 옳은 길을 찾아 모대기다가 조선혁명에 관한 김일성주석의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받아 안은후 비로소 참다운 혁명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주체16(1927)년 여름 길림에서 그분을 만나뵈옵고 가르치심을 받은후 오직 투쟁속에서 찾은 신념과 령도자에 대한 혁명적의리로부터 출발하여 그분을 혁명대오의 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었다.
주체16(1927)년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하였다. 이시기 김일성주석의 지도밑에 진행된 연예선전대활동에 참가하여 광범한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불러일으키고 길림, 카륜 등지에서 혁명조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였다.
주체17(1928)년 가을 김일성주석의 지도밑에 길림에서 진행된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에 참가하였으며 특히 시위투쟁에 쓸 선전문을 찍어 내는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시위투쟁이 고조되던 시기 김일성주석에 대한 첫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창작보급하였다.
또한 재능 있는 혁명시인으로서 《혁명가》를 비롯한 많은 시와 노래를 창작하여 광범한 군중을 교양하고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주체18(1929)년 여름부터 남만일대에 파견되여 활동하면서 민족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광범한 군중을 그이의 두리에 묶어 세우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주체19(1930)년 여름 력사적인 카륜회의에 참가하였으며 7월 3일 장춘현 카륜에서 첫 당조직성원으로 되고 7월 6일 이통현 고유수에서 조선혁명군이 결성되면서 그에 입대하였다.
그후 카륜, 고유수일대에서 신문 《볼쉐위크》의 주필로 사업하면서 혁명적출판물을 통하여 광범한 인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였다.
주체19년 8월 초에 김일성주석으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받고 할빈일대에 파견되여 정치활동을 벌리던 어느 날 불의에 들이닥친 적들의 포위속에 들어 신변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혁명가는 살아서 적들에게 체포되여서는 안된다고 결심하고 주저없이 3층집에서 몸을 던졌다. 자결에 성공하지 못하고 적들에게 붙잡혀 려순감옥으로 끌려 가 모진 고문과 박해에 시달리다가 옥사하였다.
주석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창건 30돐에 즈음하여 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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